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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금룡사 회주 진옥 스님

중생들 번뇌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게 불교의 존재 이유

중생 위한 이타심 없으면 법당 불사에 동참해도 큰 공덕 없어
인과, 한 생각서 비롯… 잘못된 마음 고치는 게 불교 수행 목적
번뇌가 사라지면 그곳이 극락…매일 수행하며 번뇌 제거해야

진옥 스님은 “부처님과 보살처럼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자신에게도 행복이 찾아올 수 있다”며 이타심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진옥 스님은 “부처님과 보살처럼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자신에게도 행복이 찾아올 수 있다”며 이타심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금룡사 극락보전 상량식을 봉행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을 모셔서 극락보전이라고 했지만, 흔히 부처님 모시는 곳을 대웅전이라고 합니다. ‘대웅’이라는 말은 큰 영웅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영웅은 칭기즈 칸 같은 세속적 영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출세간에서 말하는 진정한 영웅이란 욕심을 100% 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욕심을 완전히 버린 그런 사람을 영웅이라고 합니다. 대웅전이나 극락보전을 짓는 것은 욕심을 버린 어른을 모시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욕심을 완전하게 버린 사람은 석가모니 부처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이 내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런 용기를 가진 분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런 위대한 분을 모신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법당을 짓고, 요사채를 짓고, 여러 전각을 지었다고 정작 내 안에 있는 욕심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스승을 마음속에 모시고, 맑은 생각으로, 욕심을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발원을 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법당을 짓는 근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이렇게 큰 법당을 지었지만, 실제로 우리의 법당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진법당은 바로 몸과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 깨어 있고, 욕심 없이 살아가게 되면, 궁극적으로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청정해집니다. 

그러나 정신이 깨어 있지 못하고, 늘 도둑질하는 생각을 갖는다면 몸은 도둑의 소굴이 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어마어마한 법당을 지어놓고도, 명품에 욕심을 낸다면 이 법당은 면세점이 되고 말 것입니다. 수만 겁을 거치며 어렵게 받은 몸인데, 고작 그렇게 사용해야겠습니까? 

법당을 세우면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룬 깨달음을 배우고, 그것을 성취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이 불사에 동참하는 불자들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마음입니다. ‘나는 오늘부터 욕심을 버리고 여러 사람을 위해 이타적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오늘부터 달라질 것입니다. 

옛날 양 무제는 전국에 수많은 절과 탑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양 무제가 어느 날 달마 스님에게 “내가 8만 4천의 절을 짓고, 탑을 쌓고, 수많은 사람에게 공양을 올렸는데, 나에게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양 무제는 내심 큰 공덕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달마 스님은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달마 스님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여기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양 무제가 8만 4천의 절과 탑을 지은 것은 분명히 복 받을만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 무제에게 없었던 것은 보살의 마음입니다. 아마 여기 있는 분들도 대웅전 기둥을 하나 세웠다면 다음 생에 분명히 집 한 채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집을 한 채 받았다고 내 마음까지 편안할까요? 내 마음이 편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살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보살은 어떤 분입니까? 부처님과 보살은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타적인 일을 하겠다는 원력을 가진 분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물질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이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은 오지 않습니다. 설사 복을 많이 지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더라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도 그 삶을 들여다보면 행복해 보이던가요? 돈을 많이 가졌더라도, 최고 권력을 가진 사람도 마냥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늘 극락보전을 지으면서 여러분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부처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 역시 부처님처럼 살겠다는 발원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여섯 분의 부처님을 만나셨다고 합니다. 그중 첫 번째로 만난 부처님이 연등 부처님이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연등 부처님으로부터 법문을 듣고, 너무너무 위대하고 옳은 말씀이어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등 부처님의 성불 과정을 듣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아승지겁 동안 육바라밀행을 닦아 비로소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셨다고 합니다.

삼아승지겁은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그 오랜 시간을 수행하며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욕심을 완전히 내려놓으려면 얼마나 많은 수행이 필요하겠습니까.

모든 인과는 내가 한 생각을 잘못 일으킨 것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불교 수행의 첫 번째입니다. 잘못된 마음을 고치는 게 불교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절을 잘 지어 놨으니 구경이나 가보자’하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은 놀고자 오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는 기도하고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명상하고 참선하는 곳입니다. 어려운 사람과 함께 나누고 돕는 곳이 돼야 합니다. 그런 것 없이 그냥 절 하나 세워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모든 존재는 존재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존재해야만 하는 가치가 있을 때 존재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한국에 있는 사찰과 교회들이 존재할 가치가 없다면 곧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히딩크 감독의 고향인 네덜란드의 경우 과거에 1만 8000여 개의 성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8000여 개가 매각돼맥주나 식료품을 저장하는 창고가 되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지역에서 성당이 존재할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도 금룡사가 일체중생에게 가치 있는 도량이 돼서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불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중생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함으로써 깨달음의 기회를 주는 것이에요. 즉 중생들이 번뇌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도록 돕는 것이 불교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머리는 왜 아플까요? 번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에게 이익일까, 아니면 손해일까’를 늘 따지다 보니 그런 것입니다. 그게 번뇌입니다. 

법당에서 기도하고, 꾸준히 수행정진 하다 보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왔다 갔다하는 그 생각이 점차 줄어들어서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법당을 짓는 불사에 동참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법당을 지어 일체중생이 이곳에서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 기도하고, 법문을 배우고, 그래서 모든 중생이 이익을 얻게 하겠다는 그 마음으로 불사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사에 동참한 공덕이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극락보전은 아미타 여래를 모시는 곳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극락정토를 관장하는 부처님으로, 그 어떤 번뇌도 없는 분입니다. 

극락정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극락정토는 공간적으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거나 오거나 하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극락이라는 말은 내 마음속에 있던 번거로운 번뇌가 모두 다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그냥 즐겁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아미타 부처님도 따로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러분의 번뇌가 다 사라진 그 자리에 계실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정진하고 공부하다 보면 비로소 번뇌가 사라지고, 바로 그 자리가 극락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 공부는 번뇌를 없애는 공부입니다. 그 공부는 꾸준히 해야 합니다. 매일 시간을 정해 수행해야 합니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게을리한다면 그 공부는 절대 이룰 수가 없어요. 기도하기로 스스로 약속했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앞으로 30년 뒤에 이 법당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이 몇 분이나 계실까요? 당장 내년에 다시 볼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더 짧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허송세월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공부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새롭게 짓는 이 법당은 여러분의 법당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번뇌를 없애면서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매일 ‘금강경’을 독송해 나갑시다. 그렇게 100일을 쉬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스스로 발원한 것이 이뤄지든지, 무엇이든 변화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금룡사는 앞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능엄경’을 모시고, 달라이라마께서 주신 부처님 진신사리도 봉안할 것입니다. 많은 불자들이 꾸준히 나오셔서 함께 기도하고 공부하면서 도량을 가꿔나갔으면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번뇌를 일으켰던 마음이 안정돼서 발원하는 모든 일이 성취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리=신용훈 호남주재기자 boori13@beopbo.com

이 법문은 순천 금룡사 회주 진옥 스님이 2월 4일 금룡사 극락보전 상량 법회에서 대중들에게 설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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